이번 포스트에서는 이탈리아의 ‘엘모 & 몬테그라파’에서 만든 한국 한정판 만년필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박스를 열어가며 하나씩 이야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녹색 커버가 케이스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열어보겠습니다.
몬테그라파의 로고가 그려진 녹색 상자가 반겨주네요. 상자를 열어보겠습니다.
몬테그라파의 로고가 더 새겨진 녹색 케이스가 나옵니다. (삼중포장…) 케이스를 열어보겠습니다.
케이스를 여니, 아름다운 만년필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제가 산 것은 몬테그라파 만년필 중에서 고가 플래그십 라인인 ‘엑스트라 1930’의 한국 한정판 모델입니다. 수입사에서 제공하는 보증서와 실버 재질을 닦을 때 쓰는 은천, 설명서도 들어있네요. 이제 펜을 살펴보겠습니다.
배럴과 캡의 무늬가 참 아름답습니다. 재질은 셀룰로이드입니다. 몬테그라파가 셀룰로이드 장인이라고 하지요.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입니다. 몬테그라파의 셀룰로이드에는 라피스, 말라카이트, 펄그레이, 등 다양한 색상과 무늬가 있는데요, 제가 구매한 것은 지중해 블루(Mediterranean Blue) 색상의 셀룰로이드입니다.
이제 펜을 열어보겠습니다. 스크류 방식 — 즉, 캡을 돌려서 열어줍니다.
열어보니 더 아름답네요. 트림과 그립 부분의 재질은 스털링 실버입니다. 앞으로 조금씩 변색이 되겠지요. 그러면 아까 케이스에 있던 은천으로 닦아줘야겠습니다.ㅎ
캡의 상단에는 ‘엘모 & 몬테그라파’ 회사의 설립연도인 1912가 새겨져있네요. 이것도 스털링 실버라 변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변색 덕분에 오히려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닙을 보겠습니다.
몬테그라파에서 가장 대형이라는 이 ‘8호 사이즈 18k 금닙’에는 공작새 한마리가 아름답게 새겨져 있습니다. 원래 이 닙은 Montegrappa Extra - Mosaic Wildlife 라는 만년필에 쓰던 것인데, 이번에 펜사랑(한국 수입사)에서 배럴 색상을 지중해 블루로 바꾼 한정판으로 입수하여 판매한 것 같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 닙은 벤트홀이 없이 슬릿만 나뉘어 있습니다. 닙굵기는 F닙으로 구매했습니다.
이제 사이즈를 살펴보겠습니다.
닫았을 때 만년필의 길이는 약 138mm, 열었을 때는 약 126mm입니다. 포스팅(사용 시 펜 뒤에 캡을 꽂아 쓰는 것)했을 때의 길이는 모르겠습니다. 포스팅 했다가 배럴에 흠집이 날 까봐 시도도 안 했습니다. ㅎㅎ 무게는 42g 정도입니다.
수입사의 설명에 따르면 펜의 지름은 16.6 mm 라고 합니다. 실제로 잡아보니 굵직하고 묵직하고 든든한 그립감입니다.
이 엑스트라 만년필의 잉크 충전 방식은 ‘피스톤 필링’ 방식입니다. 그러나 듣기로는, 배럴을 통째로 잉크저장통으로 쓰는 피스톤 필러가 아니라, 배럴 안에 그보다 작은 컨버터를 붙여놓고 분해하지 못하게 만든 ‘유사 피스톤 필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기보다 잉크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제, 교토잉크 교토의 소리 히소쿠 잉크를 넣어서 밀크 프리미엄(80g)에 시필해보겠습니다.
선의 굵기는 유럽제 F닙 평균에 준하는 것 같습니다. 잉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쫀득한 필감이라기보다는 단단하고 든든한 필감입니다.
※ 물론, 같은 종이 위에, 같은 브랜드/같은 모델의 만년필을, 같은 잉크로 쓴다고 해도 펜 개체마다 편차가 있고, 쓰는 사람의 개인차도 분명 있으니, 위의 시필샷과 필감은 그저 참고로만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엘모 & 몬테그라파’는 이탈리아의 ‘바사노 델 그라파’라는 도시에서 191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엘모라는 브랜드로 시작했고, 지금은 몬테그라파라는 브랜드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회사의 풀네임은 두 개 브랜드를 합친 엘모 & 몬테그라파(Elmo & Montegrappa)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몬테(Monte)’는 산(山)을 뜻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지역에 ‘그라파’라는 산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몬테 그라파 (그라파 山)’인 것이지요. 고장의 명산으로 브랜드 네이밍을 했나 봅니다. 우리로 따지면 ’설악산 만년필’ 같은 느낌이겠네요.
이 지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의 최전방이었고, 그라파 산에서도 세 차례나 전투가 벌어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전사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마을의 이름을 ‘바사노 베네토’에서 ‘바사노 델 그라파’로 바꾼 것이라고 하네요.) 그 유명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젊었을 때 민간인 신분으로 (적십자사 소속 구급차 운전사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이 지역에 왔었다고 하는데요, 그가 머물렀던 건물이 엘모 & 몬테그라파 회사 근처였다고 합니다. 해외 웹사이트에서는 ‘이때 헤밍웨이가 여기서 〈엘모 만년필〉을 사서 개인 서신도 쓰고, 글도 쓰고 했다’고 하는데, 진짜 확실한 팩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전쟁 중이라 지역의 공장이 문을 닫고 생산 활동을 중단했다고 하기도 하거든요. 물론 전쟁 전에 제작한 만년필로 판매 활동은 했을 지 모르니, 헤밍웨이가 그걸 구입해서 썼을 수도 있구요. 저는 헤밍웨이가 엘모 만년필을 사서 썼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그런 인연을 강조하여, 몬테그라파에서는 헤밍웨이를 기념한 필기구 라인도 다양하게 출시했습니다. 볼펜도 있고 만년필도 있는데, 만년필은 정가 기준으로 저렴한 건 104만원(!?), 비싼 건 490만원 정도 하나 봅니다. ㅎㄷㄷ 몽블랑에서 첫 작가시리즈 만년필로 출시한 헤밍웨이 만년필이 더 유명하고 비싸겠습니다만, 펜에 담긴 의미로서는 몬테그라파에서 만든 헤밍웨이가 더 각별해보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두서없이 글이 길어졌네요. 헤밍웨이가 싫어하겠습니다. 잡설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