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R 자이푸르 울트라 플렉스닙 개봉/시필 리뷰 (FPR Jaipur Ultraflex nib Review)
안녕하세요. 아이디스입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Fountain Pen Revolution(줄여서 FPR)사에서 만든, ‘자이푸르 울트라 플렉스닙 만년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필압의 강약에 따라 선의 굵기를 조절할 수 있는 닙’을 ‘플렉스닙’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2022년 현재, 국내에서 십만원 미만의 가격으로 플렉스닙을 쓸 수 있는 만년필은 이것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손품을 팔아서 해외직구를 하시면 더 많은 선택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예전에 야자컴퍼니에서 수입판매했던 ‘FPR 히말라야 울트라 플렉스닙 만년필’을 구매해서 잘 쓰고 있었는데요, 최근에 베스트펜에서 ‘FPR 자이푸르 울트라 플렉스닙 만년필’을 색깔별/닙별로 잔뜩 수입해와서 팔고 있길래 한자루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럼, 박스 사진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펜이 들어있는 상자(위)와 어디에 붙여야할지 모르겠는 스티커(아래 왼쪽), 그리고 FPR 사에 대한 소개와 잉크충전방법이 안내되어있는 안내물(아래 오른쪽)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자를 여니 오늘의 주인공 ‘자이푸르 만년필’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단단하게 붙은 밑판에 펜이 단단하게 붙어있습니다. 대부분의 상자는 밑판이 분리되어서 펜을 뽑아내기가 쉬운데요, 이 박스는 밑판이 분리가 되지 않고, 펜을 고정하고 있는 끈도 전혀 신축성이 없어서 펜을 박스에서 꺼내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박스에 펜을 넣은 사람도 고생하며 작업했을 것 같습니다.
펜을 꺼내서 찍은 사진입니다. ‘FPR 자이푸르 만년필’의 잉크충전 방식은 ‘피스톤 필링’이기 때문에 컨버터나 카트리지는 없습니다.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배럴 끝부분의 캡을 열면 작은 노브가 나오는데요, 이 노브를 돌려서 잉크를 빨아들이면 됩니다. (위의 사진도 잉크를 충전하고 나서 찍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노브가 엄청 뻑뻑해서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펜을 박스에서 꺼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 잉크를 넣는데까지, 플렉스한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색상은 ‘브라운 에보나이트’를 골랐습니다. 빈티지 만년필인 워터맨 52 Red Ripple이 떠오르는 무늬라서 이걸로 골라보았습니다. (워터맨 52 사진은 아래 링크 참고) 워터맨 52는 못 사니까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브라운 에보나이트 색상의 울트라 플렉스닙을 구매했습니다만, 그외에도 다양한 색상과 다양한 닙사이즈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2022년 1월 현재 기준으로, 베스트펜에서는 11개 색상을 판매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닙은 스틸 재질로 EF, F, Flex, UltraFlex가 있습니다. (FPR 공식홈페이지에서 해외직구하시면 M, B닙이나 1mm Stub 닙도 구하실 수 있습니다. 14K 금닙도 있고요.)
펜만 찍어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면 도색 불량이나 조악한 마감처리가 (많이) 눈에 띄긴 합니다. 멀리서 보아야 예쁩니다.
자이푸르 만년필의 닙은 은장 원톤입니다. 클립이나 캡 밴드도 은장이고요. 히말라야 만년필 때처럼 투톤닙에 금장이었어도 예뻤을 것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FPR 히말라야(왼쪽)와 자이푸르(오른쪽)를 나란히 놓아봤습니다. 자이푸르가 히말라야보다 좀 더 큰 사이즈입니다. 두 펜은 잉크 충전 방식에도 차이가 있는데, 히말라야는 컨버터 방식이고, 자이푸르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피스톤 필링 방식입니다. 히말라야 만년필의 컨버터에서 많이 독특한 냄새(고린내)가 나는 걸로 유명한데요, 자이푸르는 컨버터가 없다보니 (다행히) 특이한 냄새도 없습니다.
똑같은 6호 사이즈의 울트라 플렉스닙인데, 히말라야(왼쪽)는 투톤닙이면서 좀 더 깊게 닙이 꽂혀있고, 자이푸르(오른쪽)는 원톱닙이면서 좀더 길게 빠져있습니다. 지금 보니 자이푸르의 슬릿과 인그레이빙이 조금 어긋나 있네요. 이미 잉크를 넣은 뒤에 발견한 거라서 교환이 어려울 거 같기도 하고, 쓰는데도 지장이 없어서 그냥 쓰기로 했습니다만, 구매하실 분들은 이런 부분 감안하시면 좋겠습니다. 대체적으로 히말라야나 자이푸르나 마감 퀄리티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잉크를 넣은 상태에서 무게를 재니 20그램이 나오는데요, 19~20그램 정도 나가는 무게인 것 같습니다.
자, 그럼 잉크도 넣었으니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잉크는 글입다에서 판매하는 ‘이상 문학 잉크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고, 사용한 종이는 ‘밀크 프리미엄 (80 gsm)’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호수의 여인》에서 한구절 필사했습니다.
의사들도 단지 사람일 뿐이고
우리들처럼 슬픔을 알기 위해 태어나
길고 잔인한 싸움을 해나간다.
레이먼드 챈들러 《호수의 여인》 中
※ 책 내용의 저작권은 출판사와 작가에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필압에 따라서 획 굵기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잉크는 자줏빛 베이스에 녹테가 뜨는 잉크인데, 울트라 플렉스닙과 만나 아주 예쁜 색을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마감은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울트라 플렉스 닙 하나 만큼은 참 맘에 드는, 무시하기 힘든 매력을 가진 ‘FPR 자이푸르 울트라 플렉스닙 만년필’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